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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묵상 The Malerisch Meditation

  • 전시기간       2021-02-10 ~ 2021.03.21
  • 장소 

​뮤지엄 다: 2층 기획전시실

  • 작가     

​김남표

전시 종료
  • 주최             col.l.age+, 쿤스트원
  • 주관             뮤지엄 다:
<형상으로 끝말잇기>에서 발췌
김 영 민 (전시 기획자) 

 일반적으로 끝말잇기의 법칙은 순환구조를 가지지 않고 무한이 이어질 때가지 게임이 지속되는 반면 김남표의 ‘형상연상놀이’는 최초의 형상과 마지막의 형상이 순환의 구조를 가지진다. 그 순환구조는 즉흥성에 의한 모호한 완결성인데, 이것은 구조주의적으로 말하면, 의미관계의 표층과 심층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고, 언어학적으로 말하면, 형상으로 언어적 종-횡적 축을 흩트려 놓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즉흥성이라든가 연상작용이라는 면에서는 끝말잇기와 유사하나고 있으나 순환구조를 이루고 표층과 심층의 의미관계의 여백을 만들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면에서는 다분히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과 유사하다.

 김남표 그림의 핵심은 화면 안에서 채택한 사물들 간의 물고 물리는 순환성의 연결고리에 있으며, 그 연결고리들이 형상의 유사성이라든지 형상으로부터의 연상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들 간의 의미관계를 기초로 그림을 읽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관람자는 혼란에 빠진다. 의미론적 연관으로 그림을 읽어보려는 노력은 모호함을 증폭시키게 되고, 그림이 주는 잉여 정보만 늘어나서 해석 불가능의 상태로 관람자를 내몬다. 차라리 - 독법(讀法)이랄 것도 없지만 - 독법이라면 그려진 사물들의 형태와 이어지는 형상의 형식에 집중하는 것이 독법이다. 김남표의 그림은 해석의 공간을 무한이 열어놓는다는 측면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손으로’ 체득한 대상의 즉흥적인 연상, 그리고 교묘한 배열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자동기술법(automatism)과 유사한 방식인데, 손으로 체득한 사물을 형상적 연상에 의해서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남표는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조 모피를 붙이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목탄은 유화나 아크릴과는 달리 분말의 형태로 캔버스와 그다지 밀착감을 가지는 재료는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는’ 효과 이상으로 캔버스에 재료를 스며들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동양 3국의 수묵화가 가지는 속도감과 깊이를 동시에 가지는 맑은 표현이 김남표 그림의 특장(特長)이라 할 수 있다. 캔버스에 착색을 하고 오브제를 붙이지만 그의 화면은 수묵담채처럼 보인다. 먹이라는 것이 나무를 땐 그을음을 재료로 한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 수묵화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는 것도 별반 이상할 것은 없다.

 

 김남표의 화면 구성이 ‘심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여백을 중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표현 방식이 동양성에 기대어 있으며 그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수묵처럼’ 보이게 하는 듯 싶다. 화면의 사물들은 배경이 되는 캔버스와 밀착하고, 그 밀착성이 사물간의 인식론적 간극으로 인해서 ‘여백’을 만들고 여백은 입체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일련의 이러한 재료와 기법 표현하는 사물의 관계가 순차적으로 통제되어 하나의 자동기술적인 화면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의 근작에는 거의 모든 작품에 얼룩말, 특히 얼룩말의 대가리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얼룩말이 끝말잇기 최초의 낱말이며 순환구조의 결과이다. 얼룩말은 원숭이, 사자, 앵무새, 두루미 등을 불러내고 앵무새는 하이힐을, 사자는 석조 건물을 불러내고 트럭을 불러낸다. 그리고 얼룩말의 대가리는 토양이 되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다. 꽃은 비싼 여성용 가방이 되기도 하고 폭포의 시작점은 차(茶)가 준비된 식탁이 된다. 그리고 폭포와 호수는 모든 사물의 자양분이 된다. 초현실주의 대관산수는 포수와 폭포가 완성한다.

 

 위와 같은 진술은 사물들을 어떤 식으로든 바꿀 수 있다. 얼룩말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을 연쇄할 수 있으며, 그것은 보는 사람의 인상에 의해서 결정된다. 얼룩말은 다른 어떤 사물보다도 우선 제시되며 그림을 읽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비중으로 나타난다. 혹자는 야생으로서의 익히지 않은 날 것으로 가정하여 문명과 대비시킬 수도 있고, 혹자는 토템이나 제례적 의미로써 열주(列柱)의 변형으로 보고 인류학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1990년대 고속터미널 옆 백화점 광고처럼 욕망과 소비의 상징일 수도 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보는 시각과 의미의 부여가 가능할 것이다.

 

 얼룩말은 ‘그러한’ 장치이다. 그림을 보는 이가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 안에서 최초의 연상작용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최초의 낱말이며, 그 낱말은 보는 이에 따라서 각각 다른 두 번째 낱말을 만드는 단초로 제공되는 것이다.
‘자 내가먼저 시작한다. 얼룩말!’